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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Tayo)step forth

EKKSEIN 2014. 3. 10. 09:30









"살고싶지 않았어?



나에게 삶에 대한 질문이 던져진 게 얼마만인지. 당연한 질문이겠지, 사람이라면. 다행스럽게도 너는 영혼에 대한 진실은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았다. 애정이 느껴지는 올곧은 시선. 나의 깊은 곳에 있는 내면을 묻는 표정. 안타까워하는 네 표정에 오히려 더 슬퍼졌다. 한번도 입 밖에 낸 적 없는 생각을 언어로 옮겨 표현하자니 힘들었다. 네가 이해를 구한다면 나는 해답을 주고 싶어.




"…도망치고 싶었어."



부끄러운 대답이였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마주치지 않았지만 너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너는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최악의 도피처를 택한 나를. 너는.




"…도망치기보단, 그 상황을 바꾸거나…그러니까…이겨낼 수 있는 그런 걸 소원으로…."



더듬더듬 나오는 말에 절로 지친 표정이 들었다. 누가 죽는게 무섭지 않았겠어. 계속 피하고 있던 사실이지만 나는 죽음을 수용해 품에 안은것이 아니였다. 부등호가 삶보다는 죽음으로 기울어 나는 죽음의 손을 잡았던 것 뿐이다. 단순한 이야기였다. 그냥, 소원이 있다면 면죄부를 받고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면죄부라니 정말 유치하기도 하지.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초등학생도 생각하지 않을 비겁한 도피행위.




"죽어도 책임만 질 수 있다면 딱히 살고싶지 않았어…죽는건 무섭지만, 도망치고 싶었다고…."



네 말보다 더 버벅이며 나간 말들은 엉망이였다. 그래. 나는 죽고 싶은게 아니라 살고 싶지 않은 것이였다. 나는 네 품에 안겼다. 조금 서투른 포옹에도 나는 울고싶어져서. 하지만 울고 싶지 않아서.




"…살아줘."



네 말은 따뜻했다.



"그 널 힘들게 만든거, …도와줄테니까. 내 힘이 닿는대로."




또 왜 네가, 냐고는 말하지 말아줘. 쓴 것을 삼키는 듯한 마지막 한 마디에 잠시 숨이 멎었다. 응. 나도 왜 그 말을 했나 싶어. 네 심장이 이렇게 아프게 맥박치고 있는데 나는 정말로 잔인한 말을 했었구나. 다시 한번 그 때의 네 표정이 떠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난 널 좋아해. 네가 사라지면 안돼."



사라지지 않아. 모두 의미를 잃는 걸. 네가 지금 바라보는 나도, 내가 좋아하는 너도, 내가 이제까지 지워온 책임도 관용도 의지도 그 무엇도.


네가 이렇게 숨쉬는 날 필요로 해준다면.




"동시에 너도 내가 필요했으면 해."




너를 필요로 하는 나와, 나를 필요로 하는 너를 위해. 살아가야 겠다고.








-






너는 나만큼이나 긴 이야기를 했다. 이번에는 네 차례였다. 네가 그렇게 많이 말하는 것은 꽤나 신선한 광경이였다. 처음이 아니였을까? 쉴새없이 움직이는 시선과 입매를 바라보고 있자니 조금 차분해졌다. 중간중간 말문이 막히는 부분이 있나 싶을때는 조용히 기다렸다. 어머니 이야기, 아버지 이야기. 너의 소원. 너의 친구. 너의 친구의 죽음. 나는 반쯤 몰입해 너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랬겠구나, 저랬겠구나. 당연하다는 듯 너의 편에 서서 생각했다. 사실 나는 어딘가에 있다가 나도 모르게 사라져버린 너의 친구-친구라고 불러야 할까-보다는 눈 앞의 너에게 더 신경이 쏠려있었다. 너는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고.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라고. 이게 잘못된 걸까? 너는 내 의견을 물었다.





"…그래서 괜찮아?"



"응?"



"괜찮냐고, 자아 너는."




당연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꽤나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미소지었다. 너의 행동의 인과에 나는 큰 관심을 지니지 않았다. 그래서 아프니? 아직 가슴이 무겁니? 내 입안에서 맴돈 질문은 오로지 저것들 뿐이였다.





"그래서…"




한참동안 말하던 네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비쳤다.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고 네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코 앞에 다가온 네 얼굴은 평소와 같이 예쁘게 휜 눈매를 빛내고 있었다.




"…뭐, 이런 저런 일이 있었지만. 너를 만났어."




그리고 좋아해.




결론은 이게 해피엔딩이 아닐까. 완벽한.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될.






"좋아해."







-





내가 영혼의 비밀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금방 안경을 던져버리거나-몇번 시도해봤지만 성공한 적은 없다- 갑자기 펄펄 날아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하지만 천천히 변화를 도모할 수는 있지 않을까. 네 덕분이였지만 계속 외면해온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꽤나 유쾌하지 못한 일이였다. 그래도.




나는 봉지에 담겨 며칠째 방치되고 있는 알약을 전부 변기에 풀어 흘려보냈다.

상관 없지 않겠는가, 알약 따위로 나았을 병이 아니라는 것 따위. 그리고 그런 병에도 죽지 않는 몸이라면.





…쉽게 변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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