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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랠

Ekk)서양 패러랠 3

EKKSEIN 2014. 7. 19. 14:33

"...찾았어." 


연극을 보고, 저택에 돌아와 언제나처럼 쓰고 난 장갑을 벗어 벽난로에 던져버린 자아는 입을 열고선 뒤돌아보지 않았다. 자신의 등을 보고있을 세계는 아마도 의자에 앉지 않고 멍하니 서 있을 것이다. 자아는 뭐라 입을 더 열어야 할지 타닥대는 불길만 바라보며 고민했다. 괜히 입을 열었나도 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더 참기는 싫었다. 어딘가 힘이 빠져보이는 세계의 답이 곧 들려왔다. 


"...뭘요?" 

"전에 말한 인어씨." 

"아아." 


너는 알고 있을까. 

아주 예전부터, 그 인어씨는 바다에서 올라와 내 곁을 맴돌고 있었는데. 비늘색을 바꾸면서. 





아까전 극장에서도 옆에 서 있으려는 그에게 권고해 겨우 옆자리에 앉게했다. 박스룸이라, 특히 더 불편해했던 거 같았지만 극이 시작되고 주변이 어두워지자 세계는 자아가 건낸 오페라 글라스를 들고 겨우 몸을 풀었다. (한시간 뒤 쉬는 시간때 그 오페라 글라스의 값이 마차 두대 값이라는걸 알고 다시 기겁했지만) 

자아는 극의 내용은 신경쓰지 않았다. 어제 사실 자아 혼자 보러 왔던 연극이었다는걸 오늘 함께 온 세계는 몰랐을 것이다. 우연히 만난 평민 아가씨와 멋진 귀족이 사랑에 빠진다는 흔하고 로맨틱한 이야기.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청하는 아리아는 아름다웠다. 


내가 저런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는데. 


물론 자아라면 연극 출연은 거부할 것이다. 제 인생은 저만의 것이었고, 타인에게 보일 맘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걸 자신은 아주 잘 알았다. 제가 원하는건 주연배우로 어느 순간부터 제 인생에 들어온 신세계 단 하나였다. 하지만 과연 상대는 어찌 받아들일까. 이렇게 매번 그를 휘두르던 상대를, 유희용으로만 쓰던 상대를. 죄책감과는 조금 다른 감정이었다.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했던게 맞는건지.' 


그날, 장갑을 그의 얼굴에 던지면 안됐었을까. 

그날, 그가 며칠동안 열심히 만들었던 초대장을 몰래 빼내오면 안됐던걸까. 

그날, 웃으면서 파티장에서 도망가려던 그를 잡으면 안됐던걸까. 

그날, 또 그리고 그날, 그 예전 날, 다음 날 모두... 


이미 해버린 일이었다.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 자아는 품안에서 시가를 꺼냈다. 눈치빠르게 세계가 성냥과 커팅나이프를 건낸다. 이 연극이 끝나고 함께 돌아가면, 그때...어떤 결말이 되든 말을 꺼내자. 문득 불안감에 휩싸여 자아는 시가 재를 다리께에 떨어뜨렸다. 세계가 자신쪽을 쳐다보았다. 어둠속에서 입꼬리를 올려보였다. 손수건을 꺼내려는 그의 손목을 그저 잡고싶은걸 참았다. 




"그래서..." 

"...그래서." 


그 후로 세계는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을 함께 지키던 자아는 제가 마저 말해야하나, 하다 문득 목이 말라 와인이 마시고 싶어져 옆쪽으로 몸을 돌려 준비되어있는 잔과 병을 들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안 묻는건가. ...묻길 바라세요? 그냥, 평소엔 잘 묻지 않았었나. 혹은 적당히 맞춰준걸까. 후자일 확률이 아무래도 컸다. 


"맘 같아선 결혼이라도 하고 싶지." 


아, 얼마나 자신이 못된지 그런건 모른다. 그저 자아는 솔직하지 못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쪼르르, 와인을 두잔 따르는 손이 떨렸다. 신세계는 보고있을까. 왜, 평소같으면 가까이 와서 대신 따라주었을텐데. 


"...왜요?" 

"귀족이 아니니까." 

"생명의 은인이었다면서요." 


피곤한건지, 목소리가 죽은 세계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물어보았다. 과거에 흘러갔던 그 일보다는 사실 지금이 중요하다. 두사람이 만나고 난 뒤. 계기는 뭐라고 정정지을 수 없다. 다만...그 상대도 신세계였을 뿐이다. 그냥 그 뿐이다. 

이건 유희가 아냐. 나는... 말하고 싶을 뿐인데. 자꾸 왜 이러는지. 애가 탔다. 


"너도 상류 사교계는 잘 알겠지." 

"예에...역시 그 이유인가요." 

"... ..." 

"데 가문이니까, 뭐. 이해하지만." 

"잘못됐다고 생각하나?" 

"아뇨, 도련님의 선택이니까. 저야 뭐..." 


와인 글라스 하나를 집어들어 음미따위 하지 않은 채로 들이킨다. 하나 남은 잔을 세계는 가져가지 않았다. 취한게 좋을 거 같았다. 혹은 취한 척 하는게. 자아는 겨우 몸을 돌려 신세계를 똑바로 바라보려 했지만, 다시 시선을 창 밖으로. 천장 위로.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어, 이런건. 


"... 진짜 좋아하는데." 

"...그러시군요." 

"좋은 사람이었어. 오랜만에 만나도. 사실 어릴적 그때 생각나는건 외형밖에 거의 없었지만. 다시 만나니까... ...만나보니 마음에 더 들었지. 아름답기도 하고, 머리도 좋고." 

"...네." 

"이유는 사실 중요한게 아니지만. 마음에...든 이상. 이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굳은 표정의 상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혼자서 우스운 말을 하다 갑자기 콜록, 콜록콜록 하고 사래가 든 자아가 걱정되었는지 세계가 슬그머니 다가왔다. 아, 끝까지 난 널 속일수밖에 없었다.-고 자아는 생각했다. 


"...잡았다." 


쨍그랑, 하고 섬세한 유리잔이 떨어져 깨졌다. 자아는 놀란 세계의 얼굴을 마주보고, 그의 어깨를 잡아 키스를 했다. 와인 향기가 폴폴 풍기는 혀를 집어넣어 헤집고, 차마 소리도 내지 못하는 세계를 뒤의 침대에 밀쳐 껴안아 품에 얼굴을 폭 묻었다. 따뜻한 온기가 전해져왔다. 


"...도...련님..." 


좋아해, 신세계. 매우. 좋아해. 웅얼거리며 겨우 이 말을 전했다. 맨 손으로 뺨을 쓰다듬었다. 흔들리는 시선을 마주하자 세계가 울고있어서, 자아는 그가 부숴지지 않을 정도로 꼭 잡았다. 도망가지 마, 이성이나 인내나 배려같은건 사라져 있었다. 욕심과 아집인걸 알지만. 


"신세계. 앞에 했던말은...다 거짓말. 네 배경이든 신분이든 상관없어. 그리고 뒤에 했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다." 


새까만 흑단같은 머리칼은 처음 만났었을때보다 한참 길어져 있었다. 역시 그때부터 네가 눈에 들어왔던걸까. 괜히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놀아달라고 하고. 자아는 머리 굵은, 덩치 큰 아이였다. 


"신세계..." 


자신의 서툴고 아망스러운 말들에 대한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차라리 멈췄으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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