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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는 느슨하게 반쯤 뜬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제 옆에는 검고 붉은 제복을 입은 세 명의 카스토드가 있었다. 자아가 앉은 커다란 옥좌 뒤에서부터 그의 어깨를 감싸 끌어 안고 있는 한명, 허벅지 위에 올라앉아 비스듬하게 품 안에 안겨 자아의 귀걸이를 만지작거리는 한명, 그리고 발치께에 아래에 앉아 눈을 깜빡이며 자아를 올려다보는 한명.

 

 

―모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똑같이 생긴

그가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을 가진 인형들.

 

“...하, 결국 다 우스운 장난이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품 안에 안긴 가짜 세계가 동그랗게 눈을 뜨고 차가운 입술을 자아의 목가에 부비작댔다.

 

 

 

뼈저리게, 자아 자신도 알고 있었다. 신세계는 죽은지 오래다. 너무나도 오래되어서 더 이상 기계에 저장해놓은 기억장치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회상해내지 못할 만큼.

데자아가 그를 먼저 보내고 이 지상에 남아 불사황제로서 미개한 인간들을 지배하고 한참이 지났고 -그는 세계의 흔적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금단의 술법을 사용해 세계를 복제해냈다. 세계가 죽은 지로도 약 100년쯤이 흐른 뒤였을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이 땅의 지배자. 늙지 않는 소년의 권력은 막강했다.

 

[이렇게 있을 바에는 차라리, 너와 함께 천천히 나이를 먹어가고 죽는게 좋았어.]

 

이제와선 이러한 생각까지도 논리가 미치지 않는다. 몇 번이고 후회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너무 늦었다. 남은 것은 인형들 뿐. 셀 수 없는 세기와 수많은 전쟁, 인간들의 탐욕. 그 사이에서 그들을 짓밟고 입을 막아 고고히 위에서 살아온 황제는 흐릿하고 차분하게 광기에 젖어들어 갈 뿐이었다. 자아의 의식은 오래전부터 갉아먹히고 있었다.

 

신세계가 죽었을 때부터.

 

“--...”

 

말을 하지 못하는 카스토드가, 길고 흰 머리를 어깨 뒤로 넘기고 자아의 어깨를 살짝 잡는다. 웃는 검은 눈과 마주치고 자아는 표정 변화없이 그의 입에 제 입술을 가져다 대 질척하니 한참동안 혀를 섞었다. 나머지 카스토드들은 그걸 지켜볼 뿐, 움직이지 않는다. 기묘하고도 일그러진 광경이었다. 후, 하고 옅은 숨결을 내뱉었던 그 때-

 

 

<<자아야, 기억해줘.>>

 

 

퍽, 하고 자아는 방금까지 안고 있었던 카스토드를 강한 힘으로 밀어 대리석 바닥에 내쳤다. 카스토드는 충격에 놀라 표정을 찡그렸다가 울것같은 표정으로, 부은 볼을 잡고 윗 몸을 세웠다. 환청이라, 아아. 이런.

 

“...하, 하하하, 신세계. 네 그 마지막 말이 날 여기까지 내몬거야. 난 너를 기억하기 위해 영생을 택해 미쳤고, 너는 더 이상 여기 없지! 아무 곳에도 없어! 널 대신할 이 인형들을 만들어도 결국 네가 아니잖아? 이 가짜들이 따라하는 네가 했던 표정, 웃음, 몸짓에 나는 수십번 죽었어. 그러고도 살아있다고---!”

 

씩씩거리며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자아는 내쳐져있던 카스토드의 긴 땋은 머리채를 잡아 길고 긴 홀을 질질 끌고 갔다. 나머지 두명의 카스토드는 묵묵히 남겨진 자리를 정리한다. 신음조차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가련한 인형은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하면서 결국 자아의 침실에 데려와져 고급스러운 양탄자 위에 내동댕이쳐졌다. 자아는 발을 들어 그의 흉부를 사정없이 밟았다. 잔혹한 고통에 발버둥 치는 감각이 아래에서부터 똑똑히 느껴진다.

 

“신세계인척 하지마...넌 아니잖아...”

 

이를 악물고 더 세게 밟자 카스토드는 꺽꺽대며 입을 벌리고 결국 눈물을 흘린다. 거기에 더 자아는 기분이 나빠진다. 긴 망토를 끌러 바닥에 내려두고, 벽에 걸려있던 기다란 검 한자루를 손에 쥐었다.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인형은 웃었다. 만약 그에게 목소리가 있었다면 분명 킥킥대는 웃음소리였을 것이다. 자아는 검을 높게 들었다. 인형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고 곧 제 인형줄을 잘라 털썩, 무너졌다.

 

자아는 쭈그려 제 몸을 둥글게 웅크렸다. 너무나도 갑자기 피곤했다. 카스토드의 흰 머리가 붉게, 더욱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까 키스했었던 입술 색보다 훨씬 붉고 아름다웠다.

 

 

-

 

 

데자아! 야! 별 보러 가자! 저기 저 별 알아? 으응, 사실 우리가 보는 별들은 한참 전에 빛나고 있던거래... 이미 죽었던 거일수도 있다는거지. 그러고보니 별은 진짜 오래 살더라. 너무너무 오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거라서 쓸쓸하지 않을까 모르겠네. 우주는 엄청 깜깜한거같은데... 난 깜깜한 곳 싫어. 넌?

 

자아는 다시 옥좌에 앉아 기억장치에서 오랜만에 생전 세계와 자신이 대화했던 기억을 불러내 멍하니 지켜보았다. 홀로그램 안의 세계는 그 무엇보다도 반짝이고, 빛나는 별이었다. 하지만 우주에 있었다. 그가 쏘아올려버린 것과도 같은. 닿을 수 없는 너는 나를 보고 있을까. 나는 이렇게 지상에서 너만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어.

 

 

수많은 시체인형들. 진짜와 비슷한 핏내가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자아의 검은 신에도 붉은 피들이 잔뜩 묻어져 있었지만 자아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계속 반투명한 화면만을 응시했다. 하얀 대리석은 점차 검은 얼룩들이 굳어 더러워졌다. 쨍, 하고 오랜만에 피를 가득 먹은, 검은 검신을 가진 자아의 검이 울었다.

 

네가 그리워.

 

눈물은 굳은지 오래. 아니, 원래 없었나. 언제적...아주 예전에 진짜 너와 함께 있었을 때에는 나도 울 수 있었던거 같은데. 네가 훨씬 울보였지만...

 

새로 걸친 망토 자락이 흘러 내리자 뒤쪽에서 또다른 카스토드가 나와 그의 옷깃을 여며주었다. 자아는 부서질 듯이 가짜 세계의 팔목을 당겨 끌어안았다. 이번엔 검은 머리를 가진 인형은 큰 눈을 떽떼굴 굴리더니 곧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자아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어쩔 수 없는, 수레바퀴 안에 갇혀서 이 자위행위를 반복하면서 나는 여기 있겠지. 수 백, 수 천, 수 만년을 네가 아닌 너와 함께할거야. 그래, 나는 너랑 있을거라고... ...무척이나 쉬운 합리화였다. 이렇게 세계를 자아는 제 품에 언제나 안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계속 진행중이었다. 비극은, 없었다. 세계를 읽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에 자아 자신은 너무나도 오래 질질 끌어왔다.

 

 

 

 

 

불사황제는 저릿저릿한 자신의 기계 심장을 조만간 손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삐그덕대고 있는게, 역시 점차 노쇠하고 있는 거 같았다. 차가운 쇠가 가슴께를 내내 찌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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