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랠

Ekk)이중인격 서양 패러랠

EKKSEIN 2014. 3. 14. 20:30


옆에서 코를 골며 몸을 뒤척이는 그를 보고, 세계는 겨우 상반신을 일으키고 침대에 걸터 앉았다. 정말 막무가내인 망나니 녀석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지. 자신은 그저...



유리창 밖은 스산한 바람만이 어두운 밤을 몰아내고 조용한 새벽을 울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쌍둥이지만 정말 분위기가 다르구나. 세계는 슬쩍 그의 이마를 만져보곤 조심스레 고급 양탄자위를 걸어 방 문 밖으로 나섰다. 사실 그가 자고 있지 않았다는 걸, 나갈때까지 세계는 알지 못했으리라.



딸깍.


자아이자 자아가 아닌 그는 세계의 손이 닿았던 자신의 이마를 만지작거리다, 이내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지난 밤의 기억은 하얗게 되어있었다. 아니, 검다고 해야할까.




-





"동생이 어젯밤에도 아마 결례를 끼친 듯 한데. 그렇지?"

"아뇨, 괜찮습니다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다면 바로 말해. 녀석은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을 하니까, 미리 대신 사과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하하하...아직 그럴만한 일은 없는데요."


과외 시간은 끝났다. 세계는 이 고귀하고, 기품스러운-부끄러운 말이긴 했지만 더 이상 그를 표현할 말이 적절치 않았다- 도련님의 가정교사가 된지 이제 약 두달이 지났고, 꽤나 그는 이상적인 학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르칠 것이 더 있을까 하고 매일매일이 즐거우면서, 따라잡힐까봐 생기는 작은 두려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래도 왕국대학의 서민 장학생인 그에게 이런 자리가 추천된 건 정말 행운중의 행운이라고 할 수 있었겠고.



돌아가기 전에 차나 한잔 하겠는지, 라고 물어보는 자아의 말에 어찌 세계가 거절할 수 있었을까. 일이 있어도 미뤄야 했다. 세계가 고개를 끄덕이자 이내 하녀들이 장미정원 안의 테이블에 수 많은 다과들과 다기를 준비하고, 그들이 공손하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상태에서 세계는 자아와 함께 티타임을 가져야만 했다. 이 왕국 순혈 귀족의 제일인 가문,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사람의 아들. 두달이 지나니 겨우 익숙해졌지만. '가문'이 아니라 '사람'으로서 그를 본다는 게.


"그나저나...정말 쌍둥이, 맞으시죠?"


찻잔을 올려 새로 들어온 잎의 향을 음미하던 자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에, 아뇨, 그게 아니라. 세계가 뭐라 변명해보려고 하니 그 모습을 보고 다시 웃는 얼굴로 되돌아온다.


"맞아, 내가 형이지. 몇분 차이지만."

"아...되게 닮았다고 생각돼서요."


그런데도 성격은 딴판이고 말이지. 더도말고 개차반, 이라고 표현하면 딱일듯한 자아의 쌍둥이 동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세계는 티스푼을 만지작거렸다. 왜 자아와 함께 있는데, 그가 생각나는걸까. 자아와 시선이 아주 잠시동안 마주치자 어제 제 옆에서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하며 낄낄 웃던 그의 모습이 겹쳐져, 세계는 머쓱하니 눈을 비볐다. 농담을 하면서 무릎은 왜 친거야. 정말. 그런 세계를 지켜보던 자아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역시 뭔 일이라도?"

"아뇨! 아니, 진짜 없어요. 좀... 어...활발하시지만? 그렇지만 좋으신 분이라고 생각해서..."


앞 뒤가 맞지 않는 말을 주절거리며 세계는 잔을 들어올렸다.


"그가 마음에 드나?"

"푸우읍-"


서 있던 하녀들이 재빨리 냅킨을 가져다주고, 세계는 겨우겨우 제가 뱉어버린 자국을 닦으며 자아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채 더듬댔다. 마, 마음에 들다니요? 괜히 찔려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아의 눈빛은 그를 꿰뚫어보듯이, 웃고있지만 한편으론 날카롭게 세계를 찔렀다.


"마음에 드나보네."

"아뇨, 그치만 자아 씨도 좋으신 분이고."

"...좋은 학생, 이겠지. 좋은 귀족이거나."


자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세계가 저기, 라고 외치며 그를 따라가려고 하다가 말았다. 왜인지 따라가면 안될 듯 싶었다.


그렇지만, 먼저 거리를 두는건 도련님 쪽 아니였나요. 동생분은 달랐는걸요.

그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



"왜?"


한 밤 중에 도둑처럼 자기 저택의 담을 넘는 그가 (정문은 빠져나가기 어렵다고 했다)세계를 향해 뒤돌아 물었다. 끙차, 하고 이어져서 쿵. 하는 소리가 나 넘어졌겠으니 싶었지만 세계도 곧 저리 될까봐 두려운건 마찬가지였다.


"데자와씨랑..."

"씨는 무슨, 그냥 그자식이라고 불러."

"전 그렇게 못부르거든요?"

"하하하, 부르곤 싶다는거야?"


몸을 올려 가뿐히 담을 넘는다. 웃고있는 그가 보이고, 그는 세계의 손을 잡아 장난스레 에스코트 하듯이 걷다가 이내 함께 뒷골목을 요리조리 달리기 시작한다. 숨이 차올라 아까 말하려던 말을, 세계는 잊어버렸다. 진짜 같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의심증은 점차 커졌지만 이제보니 또 상관없는 거 같았다.



"그나저나 목 뒤쪽에, 귓가에 점이 있네요."

"뭐? 그래? 난 몰랐는데. 넌 어디 점 없냐? 상납해놔."



바보같은 소리를 중얼거리며 강가 다리에 다다르자 흐릿한 수은등과 밝은 달빛에, 서로의 얼굴이 드러난다. 건들거리며 그는 세계에게 말을 붙이다가 이내 갑자기 조용해져 강에 돌을 퐁당퐁당 의미없이 던지기 시작했다. 그가 먼저 입을 닫자 왠지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인거 같아, 세계도 가만히 서서 수면만을 지켜보았다.


"...내가 가면, 어떨거 같아?"

"어떨거같냐니..."


원래부터 세계에게 갑자기 왔던 사람이었다. 아직도 세번째 과외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길에 불쑥, 정원에서 나와 세계의 손을 잡았던 그 때가 명확히 떠오를 만큼 만남은 급작스러웠다. 도련님? 이라고 묻자 그는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다. 쌍둥이 동생이라고, 했다. 말해주지 않은 그의 이름은 아직도 몰랐다. 처음엔 그가 장난치는거라고 생각했지만 얘기를 나눌수록, 함께 커져가는 감정을 알 수록 데자아와 이 사람은 분명 타인임을...느낄 수 있었는데.


퐁 퐁 하고 강 안으로 작은 돌들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역시 쌍둥이구나. 이럴때의 옆모습은 그냥 동인인물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 싶었다. 그는 한참동안 세계쪽을 바라보지 않고 아-하고 탄식만 터뜨리더니 피식, 웃어버렸다.


"형이, 나 가래."

"어디로요?"

"몰라, 원래 가문에서도 쌍둥이는 나쁘게 보니까. 말했지? 지방에서 살다가 올라온거라고. 제멋대로."


그는 세계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고, 얼떨결에 잡자 세계의 손을 확 낚아챘다. 그답지 않게 먼 곳을 바라보는 표정이 매우 쓸쓸해보였다. 시선은 이상하게도 마주치지 않았다.


"보고싶을거야."

"진짜 가요?"

"가라는데 어쩌겠어. 아직 내 힘이 없어서."

"힘?"


형이, 나보고- 뒷 말은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차마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어디서 불어온걸까. 앞머리가 팔랑팔랑 거리고, 숨겨져있던 눈가가 드러난다. 그는 말을 마치고 슬프게 웃은 다음에 -평소처럼 소리내 웃지 않고 마치 데자아를 흉내내기라도 하듯이-쏴, 하는 나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잠시 뒤 그가 영영 세상에서 사라졌다는걸, 세계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