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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이라."
웃고있는 입술과 다르게 자신을 꿰뚫어보는 그 눈빛이, 세계는 자신의 18년 인생중 최고로 소름끼치고 동시에 등 뒤로 식은땀이 비죽비죽 흘렀다.
"글쎄, 내 눈 앞엔 없는거같은데 말이지,"
투명한 글라스에 반쯤 차 있는 와인을 찰랑거리며 자아는 비꼬듯이 조용히 세계의 귀에 속삭였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아니, 아마 실제로 그럴것이다.
한편 세계로서는 속이 터지고 짜증나고 울고싶을 지경이었다. 하루와 자신이 남의 이름을 빌려 몰래 가는 파티는 그리 많지도 않았고, 한번 가려면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루 전날에 데 자아가 여기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전해들어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운명의 여신이 장난이라도 쳤는지 가는 곳 마다 데자아와 둘은 파티장에서 만나게 되었고, 어떻게 변장을 하든 그는 이들을 알아보고 슬쩍슬쩍 말을걸며 옥죄어오긴 했다. 게다가 저번엔 그 때문에 주최쪽에게 거의 들킬 뻔 했다. 적당히 도망와서 다행이지.
'너한텐 유희나 장난일지 몰라도 우린 목이 잘릴 문제라고!'
...물론 이걸 입 밖으로 본인에게 말할 순 없었다.
세계는 자아의 부담스러운 눈으로부터 슬쩍 시선을 돌려 부채를 들고 웃고 있는 하루쪽을 바라보았다. 어서 달아나자, 라는 깜박거림 신호. 그러나 그것을 미처 전달하기 이전에 자아가 그쪽으로 몸을 돌려 막아버렸다. 홧김에 욕이 나올뻔한 입을 꾹 막았다.
도대체 뭘 원하는건지.
그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자아는 그에게 자신의 와인잔을 건냈다.
"나와 얘기나 좀 하자는 거라고 생각하면 편할걸. 경비대에게 말하기 전에, 이 편이 나을거야."
"...왜...아니, 얘기하면 경비대한텐...말..."
"안 할게. "
누구도 의심받지 않을 걸음으로 천천히 테라스로 향하는 둘을 보며, 하루는 불안하다는 표정을 부채 아래 겨우 숨겼다.
-
"그레이 공작 쪽은... 사칭하지 않는게 좋을걸. 오늘 이 파티가 참석 인원이 많아서 꼼꼼히 인원체크를 하지 않는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왜요?"
"얼마전에 부고를 당했어. 삼일 전인가. 소식이 중앙 수도까진 안 퍼진게 너희에겐 행운이려나."
매력적인 목소리,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태도. 자신이 여자였다면 넘어갔을 법한 친절한 미소와 매너. 하지만 세계는 이런 것들을 잘 안다. 모두 가면일 것이다. 또한 이전에 맨 처음 골목에서 만났던 그를-사실 그인지 아닌지 지금와서는 아리까리하지만-기억하기에 지금 이런 모습을 믿지 않는다. 참 심심하신가보다, 도련님은. 세계는 거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목으로 넘어가는 와인이 썼다.
"...이런 정보를 알려주시는 이유라도?"
"아니, 뭐. 다음번엔 잘 사기쳐서 오라고. 이건 잘 만들었네, 확실히."
아까 세계에게 달라고 해서 받은 가짜 초대장(며칠간 세계가 공들여 위조한 것이다)을 손으로 팔랑대며 자아는 가볍게 이야기했다. 세계는 입을 열고 자신들의 처지를 이야기하려다가 말았다. 문득 입고있는 옷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주아에게 빌린 고급 정장. 물로 씻으면 지워지는 염색 머리칼. 연극이라도 하듯 얼굴에 점을 찍고 웃는 우스운 꼴.
-어쩔 수 없잖아. 먹고 살려면...!
"무슨 생각이라도?"
"아뇨, 음...아무것도."
세계는 시선을 피했다. 귀족은 이런걸 모를 것이다. 살기위해 해야 할 것을.
실제로도 그는 몰랐다.
앞으로는 얽히기 싫네. 역시 하루한테 파티는 그만 오자고 할까. 찍힌 거 같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밤 하늘의 구름 사이로 달이 나타나고, 테라스 난간에 기대있던 자아는 하얀 세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둘 다 정적만을 지키다가 세계가 먼저 눈을 내리깔고 입을 열었다.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가요."
"다음에도 와달라고 하면, 와주려나."
하루라면 여기서 화를 냈을까?
세계는 그 말에 그저 머릿속이 멍했다. 아래쪽으로 시선을 옮기니 그의 장갑이 눈에 들어온다.
여전히 이니셜이 써져있는 고급 장갑. 저번에 자신은 그 장갑을 팔아넘기고 좋아했었다. 이틀은 먹을 수 있는 값이라며.
'우습기도 하지, 신세계.'
"...글쎄요."
"금발은 네 눈이랑 잘 안 어울리니까, 다른 색으로 와."
이 말을 끝으로 문을 열고 자아는 사람들이 많은 홀로 들어가버렸다. 세계는 그가 두고 간 와인잔만 쳐다보다가 괜히 툭, 건드려 밑으로 떨어뜨려버렸다. 깨장창, 유리가 깨지는 소리는 안쪽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묻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자아는 아무래도 이것이 숨바꼭질 놀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만 문제는, 이 놀이를 하기에는 둘 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에 있었다. 세계는 그리고 현실을 아주 잘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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